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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집, 거짓 속에서 진짜가 되고 싶었던 남자

by lunamir 2024.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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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거미집은 문화예술에 대한 검열이 극심했던 1970년대 유신정권 아래에서 영화를 제작하는 모습을 풍자적으로 그린 작품입니다.

 

국가에서 영화의 시나리오를 사전검열 한다는 것이 지금 시대의 기준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 같지만 실제로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1972년 유신헌법을 만들고 계엄을 선포해 모든 언론 출판과 방송에 대한 사전 검열을 실시해 철저하게 국민을 통제하는 독재자가 되려고 했습니다. 

 

정치적 성향을 분류해 문화예술인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현 정권에 비판적인 작품을 만들면 국가지원금을 끊는 모습을 보면 대한민국 문화 검열의 역사는 아직도 유효한 것처럼 보입니다. 

 

아무튼 영화 거미집은 이러한 당시 시대 배경에서 김열 감독이 영화를 제작하는 '영화 속의 영화' 작품입니다. 영화 제작을 소재로 다룬 작품은 2023년에 개봉한 바빌론이란 작품도 있습니다. 브래드 피트, 마로 로비 등 배우가 출연해 할리우드의 이야기를 그렸는데 좋은 작품이라 추천합니다.

김지운 감독, 거미집으로 재개할 수 있을까

영화 거미집은 1998년 조용한 가족으로 데뷔와 동시에 충무로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김지운 감독이 연출과 각색을 맡았습니다. 어릴 적 조용한 가족 특유의 음산한 분위기와 유머를 재밌게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김 감독은 이후로도 반칙왕, 장화홍련, 달콤한 인생, 놈놈놈(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악마를 보았다, 밀정 등 인상적인 작품을 꾸준하게 선보였습니다. 강동원 주연의 인간병기 소재의 SF물 인랑이 평론가와 관객에게 외면받긴 했지만 한국 영화계에 기여한 감독임에는 분명합니다. 

 

거미집은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스크린 비율을 가로가 더욱 넓은 1.66:1 비율(5:3)로 제작했습니다. 1.66:1 비율은 미국의 영화사 파라마운트에서 50년대 만든 화면비로 현재는 간혹 예술영화에서 쓰일 뿐 사용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생소한 화면 비율과 흑백영화 두 요소가 거미집 스타일을 잘 표현해 줬습니다.

 

거미집은 영화를 만드는 영화이다 보니 다수의 배우들이 출연합니다. 우선 주인공 김 감독은 반칙왕, 놈놈놈에서 김지운 감독과 호흡을 맞췄던 송강호 배우가 연기합니다. 영화 안에서 거미집에 출연하는 배우들로는 임수정(이민자), 오정세(강호세), 정수정(한유림), 박정수(오여사) 등이 있습니다. 여기에 영화제작사 신성필름을 운영하는 백 회장은 장영남, 신미도는 전여빈이 분합니다. 

 

거미집은 70년대 검열을 뚫고 영화를 제작한다는 소재인 만큼 그 시대의 영화감독들에서 모티브를 가져왔습니다. 고 김기영 감독의 가족이 거미집이 고 김 감독을 희화화한다며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걸기도 했으나 원만히 합의돼 무사히 개봉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 영화를 보면 가족들이 염려하는 그런 요소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신상호, 이만희 감독을 모티브로 캐릭터 설정을 잡았다는 의견이 더 많습니다.

 

안타깝게도 흥행에는 실패하며 국내 관객 31만 명을 동원하는데 그쳤습니다.

검열을 뚫고 영화를 완성시켜야 한다!

영화 거미집의 촬영이 끝난 김 감독은 잠이 든 어느 날 꿈속에서 영감을 받습니다. 그전까지 자신의 스승이었던 신 감독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해 열등감과 주변의 조롱의 시달렸습니다. 김 감독은 꿈에서 본 장면 그대로 재촬영을 하면 시대의 걸작이 탄생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하지만 유신정권 아래 문화공보부(문공부)는 영화 시나리오를 사전 검열해 촬영을 허가해주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반사회적, 반체제적이라는 이유를 내세우지만 실상은 독재 권력 유지를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권력도 걸작을 완성하겠다는 감 감독의 꿈을 꺾을 순 없었습니다.

 

김 감독은 영화 제작사 신성필름으로 찾아가 시나리오를 보여주며 설득에 나섭니다. 문공부에 발각될 껄 염려한 제작사 직원들은 반대하지만 신감독의 조카이자 신성필름의 후계자인 실세 신미도는 김 감독의 시나리오를 읽고 극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성당에서 마치 하늘의 계시라도 받은 듯 미도는 자신만 믿고 재촬영을 하자며 더 적극적으로 나섭니다. 미도의 적극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김 감독은 서둘러 배우와 스텝들을 집결시킵니다. 하루만 촬영한다는 거짓말에 속은 배우들이 반발하지만 김 감독은 불도저처럼 촬영을 밀어붙입니다.

 

어느새 든든한 조력자가 된 미도는 재촬영에 까칠하게 행동하는 유림을 몰아붙이거나 찾아온 문공부 공무원을 술을 먹여 잠들게 하는 등의 방법으로 김 감독의 걸작 탄생을 돕습니다. 문까지 걸어 잠근 촬영장에 문공부의 최국장이 찾아오자 김 감독의 기지를 발휘해 이건 반공 영화라며 변명해 위기를 넘기게 됩니다. 

 

사실 김 감독의 스승인 신 감독이 화제 사고로 목숨을 잃을 때 그는 사무실에서 시나리오를 훔치고 있었습니다. 훔친 남의 이야기를 이용해 영화를 찍은 싸구려 감독이라는 낙인을 지우기 위해 촬영 세트가 불에 타는 상황에서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김 감독은 문화 검열을 뚫고 자신만의 진짜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었을까.

관객들 호불호 극명히 나눈 평가

거미집은 개봉 후 관객들의 호불호가 극명히 갈린 영화입니다. 영화 제작에 흥미가 있지 않고 편한 킬링타임용 영화라고 생각하고 보면 난해한 것이 사실입니다. 거미집 안에서 거미, 조명, 형사 역할 등 다양한 비유 장치가 사용됐는데 알고 보면 흥미로운 부분도 있으나 상업 영화로서는 부족해 보입니다. 

 

역사 속에서 문화 예술 작품은 은유와 풍자로 그 시대의 문제를 드러내고 시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을 했는데 개인적으로 거미집에서 이 부분에 초점을 맞췄으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작품 속에서 미도가 물불 가리지 않는 캐릭터이긴 하지만 김 감독의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빠져버린 장면은 별로 납득이 가진 않았습니다. 관객이 볼 때에도 시나리오가 너무 좋다는 생각이 들어야 공감이 갈 텐데 보면서 오버스러운 느낌이 강했습니다. 

 

한유림 역을 맡은 정수정 배우는 영화에서 연기하는 건 처음 보는데 생각보다 역할을 잘 소화해 가장 눈에 띄었습니다. 

관객의 마음은 잡지 못한 거미집

권력도 막지 못했던 걸작을 향한 감독의 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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