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민덕희>가 드디어 오늘 개봉했습니다. 제가 시민덕희 개봉일을 기다린 이유는 영화 포스터 적힌 "아무도 못 잡으면 우리가 꼭 잡는다"라는 한 구절의 문구 때문입니다.
3년 전 지금처럼 매섭게 날씨가 춥던 1월 우리 가족은 보이스피싱을 당했습니다. 돈도 돈이지만 당했던 과정에 대한 기억은 잊고 지내다가도 불쑥 불쑥 튀어나와 저를 괴롭게 만듭니다. 그 이후로 늘 마음에 품고 있던 생각이 '언제가는 내가 그놈들 꼭 잡고만다' 였습니다. 현실에서 실현하기는 어렵지만 잡고 싶다는 열망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늘은 제가 보이스피싱 과정에서 느꼈던 기억과 감정을 섞어서 영화 <시민덕희> 후기를 적어보겠습니다.
더 이상 잃은 건 없다! 시민덕희가 직접 나선다.
요즘 서울의 봄을 시작으로 얼어 붙은 국내 극장가에도 다시 활력이 돌고 있습니다. <시민덕희>가 과연 극장가 흥행 바톤을 이어받을 수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영화는 어떤 배역이던 자신처럼 소화하는 생활밀착형 연기의 달인 라미란 배우가 1년만에 선보인 작품입니다.
2022년 이후로 드라마 외에는 별다른 연기 작품 활동이 없었는데 올해 1월 시민덕희로 돌아왔습니다. 정직한 후보 1, 2를 재밌게 봐서 '통쾌한 복수극'을 그린 이번 작품에서도 비슷한 결의 연기로 런닝타임 내내 즐거웠습니다.
이번 작품에는 라미란 배우뿐만 아니라 좋아하는 배우들이 일명 '팀 덕희'로 뭉쳐 호흡을 맞췄습니다. 덕희(라민란)와 중국 현지에서 통역을 해주는 세탁소 공장 동료 봉림은 염혜란 배우, 언제나 에너지를 뿜어 내는 아이돌 홈마 출신의 숙자는 장윤주, 중국 칭다오에서 발이 되어주는 택시기사 애림은 안은진 배우가 각각 맡았습니다.
팀 덕희가 보이스피싱 조직을 잡기 위해 중국 칭다오에서 보여주는 좌충우돌 이야기가 시민덕희의 주요 관람 포인트입니다.
연출은 1985년생의 박영주 영화 감독님 맡았습니다. 시민덕희 이전에 연출한 작품으로는 <선희와 슬기 >, <1킬로그램> 등이 있습니다. 시민덕희가 박 감독의 첫 상업영화 연출작으로 올해 초 인터뷰를 통해 시민덕희는 '산뜻하고 힘있게 나아가는 범죄 타도극'인 필 굿 무비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만큼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유쾌한 수사물로 풀어냈습니다.
보이스피싱범 잡기 위해 뭉친 덕벤져스 4인방
세탁소 공장에서 일하는 덕희는 집의 화재 피해를 입게 되면서 아이들과 거리에 나앉는 처지가 됩니다. 당장 돈이 급해 대출을 받으러 은행에 가지만 조건이 안 된다며 거절당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은행 직원 손대리가 전화를 걸어 대출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수수료 명목으로 돈을 요구한 손 대리에게 덕희는 8차례 돈을 보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돈은 입금되지 않고 순간 덕희는 보이스피싱을 당했다는 생각에 은행을 찾아가지만 자신에게 사원증을 보낸 손대리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었습니다.
그 길로 경찰에 신고를 하러 가지만 돌아온 건 잡지 못한다는 냉소 섞인 형식적인 대답. 좌절하고 있던 그때 손대리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옵니다. 이번에는 되려 자신을 구해달라는 손대리의 전화에 덕희는 고민하지만 지금은 뾰족한 방법도 잃을 것도 더이상 없기 때문에 믿어보기로 합니다.
손대리의 적한 메시지를 풀어내 중국 칭다오의 주소를 알아내고 경찰에 찾아가지만 또 돌아오는 대답은 거절이었습니다. 덕희는 경찰이 안 하면 내가 한다는 생각에 중국행을 결정하고 의리의 동료 봉림, 숙자가 함께 합니다. 칭다오에 도착해 본격적인 손대리 구출기 혹은 보이스피생 총책 잡기 여정이 시작됩니다.
피해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다.
시민덕희의 주요 감상포인트는 단연 '팀 덕희'의 활약상입니다. 박감독이 말대로 시민덕희는 보이스피싱 조직이라는 거대 사회 악(빌런)가 맞서 싸우는 여성 히어로 장르인데요. 팀 덕희를 보고 팬들 사이에서는 덕벤져스라고 불리고도 있습니다. 봉림은 유창한 중국어 실력으로 칭다오에서 애림과 함께 팀 덕희의 브레인 역할을 보여줍니다.
숙자는 대포카메라를 들고 아이돌을 쫓아다니던 실력을 살려 사진을 찍으며 보이스피싱 조직의 정보를 수집합니다. 덕희를 위해 함께 오기는 했지만 보이스피싱범을 잡겠다는 광기어린 덕희의 모습때문에 투닥거리며 웃음을 만들어 냅니다. 시민덕희는 애매한 감동 요소를 주지 않고 끝까지 속이 시원한 사이다 전개로 밀고 나가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로서 시민덕희를 보는데 생각만 하던 것들이 영상을 구현돼 보는 경험은 카타르시스를 일으켰습니다.
시민덕희를 보면서 공감했던 장면은 경찰의 태도입니다. 영화 속에서야 박병은 배우가 형사 연기를 하다보니 코믹한 설정이 들어가 재밌게도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절대 그런 일이 없습니다. 보이스피싱을 당하고 안산경찰소 사이버범죄수사팀에 갔을때 경찰의 시큰둥한 태도는 더 큰 상처를 줬습니다.
영화는 주소가 없으면 못 잡다는 말을 반복하지만 현실에서 경찰은 애시당초 잡을 생각 조차없었습니다. 일단 '피해자가 찾아왔으니 조서는 쓰긴 쓴다' 딱 이 태도입니다. 보이스피싱범이 전화를 건 전화번호 알려주려 하는데도 번호 알아도 소용없다며 들으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결국 방문했을 때 주지 못하고 다음날에 혹시나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메일로 번호 보냈습니다. 물론 그 뒤로 수사 진행 상황같은 어떠한 연락도 한번 오지 않았습니다. 공무원의 무능도 경찰만큼 만만치 않았습니다. 보이스피싱 전달책에 돈을 건낸 주민센터 앞에 CCTV가 있어서 확인하려 했지만 안산시청과 안산도로공사 서로 자기 소관이 아니라며 떠넘기며 영상 유무도 확인 못했습니다.
보이스피싱 조직도 정말 나쁘지만 개인적으로 피해를 당하며 느끼건 우리나라 경찰과 공무원의 무능이었습니다. 혹시라도 피해를 당하신 분들은 신고하러 가서 너무 상처받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피해자 입장에 공감하고 적극적인 자세를 가진 분들도 물론 있겠습니다만 저는 당시에는 보지 못했습니다.
상상으로만 하던 일을 영화 시민덕희를 보며 대리만족을 할 수 있어서 아물지 않던 상처가 조금이나마 치료받은 기분이었습니다.
실화였으면 더 행복했을 영화
오늘의 영화 한 줄평은 테이큰의 대사로 남겨 보려합니다.
I don't know who you are. I will look for you, I wil find you and I will kill you